70년대 중반에 태어나서 감추어진 채 마냥 커지고 있던 쾌락과 타락과 금기의 시대에 사춘기를 보내고 정치적 허무주의에 빠진 20대를 지나 기댈 곳 없는 30대까지 이러고 있는 한 사람의 터닝 포인트들. 왜 그런 음악을 만들고 있나요? 혹은 누구누구의 음악과 비슷한 것 같은데요? 라는 질문들에 대한 답변.

1. Seven and ragged tiger - Duran Du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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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엔 외모로 승부하는 아이돌도 뮤지션이었습니다. 뭐랄까 뉴키즈온더블록이 다 망쳐버렸고 그 이전엔 이만큼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라는 것도 다 아저씨의 푸념일지도. 무엇보다 80년대에 사춘기나 그 언저리를 보낸 사람들이라면 들을 수 밖에 없었던 음반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평론가 나부랑이들이 '상업적이다'라는 레토릭을 일종의 비난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 아니었을까. 2집 Rio의 대대적 성공에 이은 세번째 초히트작. 펑크와 씬쓰팝의 결합, 뉴웨이브 같은 건 몰랐지만. 개인적으로는 어쩐지 a면, b면의 마지막 트랙 즈음의 곡을 좋아했던 기억으로 볼때 대중적인 취향은 아니었던 것 같고 앤디 테일러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된 락 favor의 곡이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후 존 테일러와의 헤게모니 다툼에서 밀린 앤디 테일러는 팀을 탈퇴.
 지금까지 남아있는 신쓰팝의 취향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해답이자 이후 나를 락음악으로 이끌어주기도 한 일생일대의 앨범.

2. And justice for all... - Metall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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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이 된 이후 폭풍의 시기로 진입하면서 아이언 메이든과 본조비와 라우드니스의 어디쯤에서 음악적 정체성(=인생의 의미)을 찾고 있던 꼬마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한 장의 헤비니스. 외국에선 이미 3집 master of pupeets으로 스타가 된 이후의 문제작일테지만 국내에선 이 4집이 메탈리카 최초의 정규 앨범이었다. 헤비메탈을 즐기던 형도 누나도 없던 나에겐 늦은 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다운피킹, 투베이스 드럼, 낮게 쏘아 붙이는 보컬 등 쓰래쉬 메탈의 정수를 담고 있다. 저녁밥을 먹으며 보던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했던 one의 라이브도 생각나고. 뭐 이런 음악이 다있어! 라면서 완전히 빠져들었고 이후 달리기 일변도의 음악취향으로 이끌어준 앨범이다.

3. The road to you - Pat metheny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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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래쉬와 데쓰 일변도의 취향으로 가고 있던 재주생 시절(용케 노량진에까지 한 시간이 넘는 통학로로 학원질을 했는데 거기엔 당시 메틀 앨범 판매상으로 제법 유명했던 머키 레코드가 있었다. 집에 가려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쇼윈도에서 틀어주던 sepultura의 라이브 같은 것이 생각난다) 뭔가 과격하지 않은 새로운 것은 어떨까 싶은 마음에 재즈라는 거나 한번 들어볼까 하고 집어들었다가 집에 가는 동안 눈물을 글썽였던 기억이 난다. 쓰래쉬-데쓰가 아니어도 좋은 음악이 있었구나. 아니 그 보다 뭐가 이런게 찡한 거지. 복잡 미묘한 취향으로의 입구. 센치한 구석이 있는 재수생이 뭔가 불안한 심정으로 탄 집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Last train home을 들었다. 뭐 그런 이야기 입니다.

4. Beaucoup Fish - Under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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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중후반 음악좀 듣는다 하는 사람들이 락과 재즈 부근에서 서성거리다가 어떤 사람들은 익스트림 메틀로 가고 어떤 사람들은 브릿팝으로 가고 어떤 사람들은 난데없는 얄팍한 재즈 붐에 몸서리를 치며 우왕좌왕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일렉트로니카라는 신세계로 떠나다가 난데없는 얄팍한 테크노 붐에 몸서리를 치며 우왕좌왕 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나는 테크노의 명반인 이 음반으로 일렉트로닉 음악에 입문을 하게 되었다. 장대한 구성의 5분이 넘어가는 곡들을 듣다가 반복속에 존재하는 소소한 바리에이션으로 7, 8분을 너끈히 넘기는 이런 곡에 대해서 경외감을 갖게 되었달까. 참 고르기도 잘 골랐지 어째서 언더월드를 골랐을까. 참 장하다. 팻보이 슬림을 골랐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텐데.

5. 2000 - Ryuichi Sakam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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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렉트로닉 음악을 뭐 그냥 그 즈음 태어난 새로운 음악으로 생각하고 있던 무식한 자가 그 뿌리 언저리에서 한 가닥 하셨던 YMO라는 거목에 함께 하셨던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의 음악을 처음 접한것은 얄궂게도 우리나라에서만 발매된 이도저도 아닌 짜깁기 편집음반 이었다. 어디선가 줏어들은 이름만 읽고 집어들었는데 이게 뭔가 이도 저도 아닌 음악들이 잔뜩들어있는 신세계로 통하는 입구였다니. 그래서 그 무식한 아이는 크라프트베르크도 알게 되었고 YMO도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취향은 한 바퀴를 돌아서 일렉트로닉 팝으로 부터 그것과 펑크의 이종교배인 뉴웨이브 음악으로부터 사카모토 선생의 (어딘가 기묘하게 세계적인 느낌의)월드뮤직까지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 다음 부터는 간간이 그 사이에 빠진 톱니바퀴를 메꾸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지금 같은 음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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